역사와 사자소학으로 실천하는 지혜독서 by 박경혜님 가정
입시로 달리다 지혜독서로의 방향 전환
저희는 첫아이 6 살 때 대치동에서 자녀교육을 하신 시부모님의 권유로 잠실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공부보다 아이가 밝고 건강하게 자라는데 초점을 두고 아이를 키워왔습니다. 잠실에 이사 온 후로도 아이는 단지 내 국공립어린이집에 다니며 주말이면 신나게 들로 산으로 놀러 다녔습니다. 그렇게 어떻게 보면 아무 준비 없이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입학 후 자연스럽게 아이 반 친구 엄마들과의 모임이 늘어나면서 저는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알파벳을 모르고 입학한건 저희 아이뿐 이었고, 다른 아이들은 줄넘기조차 학원에서 배워왔습니다. 그래도 아이가 차차 적응하고, 공부도 때 되면 하겠지 라며 여유를 가지려고 했는데, 학교 선생님과의 면담 이후 ‘내가 뭘 모르고, 잘못하고 있다.’라는 위기의식이 생겼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절 보시자마자, “집에서 아이 공부 안 시키시나요?” 라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집에서 엄마가 너무 안 시키면 아이의 자존감에도 문제가 생기니 집에서 아이 공부를 좀 챙겨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으니 아이가 자주 집에 와서 하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엄마, 난 못해... 다른 아이들은 뭐도 잘 하고 뭐도 잘 하는데, 나는 잘 하는 게 없어...‘
퍼뜩 정신이 들면서는 저는 그때부터 학원을 알아보고 아이를 다그치기 시작했습니다.
‘출발이 늦었으니 우리는 뛰어야 해!’
엄마의 무지로 아이를 힘들게 한 것 같은 죄책감도 들어서 그 동안 뒤 처졌던 부분을 따라 잡기 위해 더 열심을 냈던 것 같습니다. 학원 다니고 문제지 푸는 공부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 아이였지만, 제가 이런 저런 방법으로 밀어주었을 때 아이는 생각보다 잘 따라왔습니다. 그래서, ’아 이게 맞구나‘라고 여기고 입시와 경쟁이라는 한 방향 만 보고 달리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실력이 늘수록 이상하게 아이의 얼굴은 어두워지고 저 역시 아이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져서 칭찬보다는 아이에 대한 다그침이 더 많아졌습니다.
저와 아이의 이런 모습을 아빠는 늘 안타깝게 바라봤습니다.
“여보,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와의 관계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라고 자주 말했지만, 이런 말이 제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데, 너무 현실을 모르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학원 숙제를 하고 부지런히 영어, 수학 선행 학습하기도 모자란 시간에 좋아하는 놀이하고 좋아하는 책을 읽으려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못 마땅한 마음에 잔소리를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저희 아이는 어느덧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공부만 해야 하는’ 아이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심 선생님의 유대인 자녀 교육 강의를 듣고 하브루타 모임에 참석하면서 저의 이런 방향성이 무언가 잘 못 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 무의식에 심어진 강박관념
심 선생님과의 역사 하브루타 시현 시간에 한 번은 심 선생님께서 아이에게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될까라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아이는 “열심히 하면 되죠.”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럼 더 열심히 하면 되죠?”
심 선생님께서 다시 좀 더 구체적인 상황으로 질문하자, 아이는 다시 무조건 열심히 하면 된다는 식으로 대답했습니다.
이 대화를 들으며, 저는 마음속으로 깜작 놀랐습니다.
‘열심히 해!’, ‘ 더 열심히 해!’, ‘무조건 열심히 해!’ 는 잘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를 다그칠 때 마다 제가 습관적으로 아이에게 하던 말이었습니다. 저의 조급함으로 인해 아이가 무의식적으로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이제 입시의 무한 경쟁의 열차에 내려와 우리 가정만의 걸음을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실 심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교육관은 저도 원래부터 실천하고 싶었던 교육 이상이기도 했습니다.
‘공부만 잘 하는 아이가 아니라 마음 따뜻하고 친구도 배려할 줄 아는 아이’
‘자기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역경을 근성 있게 헤쳐 나가는 아이’
공부보다, 지혜와 인성을 갖춘 아이가 제가 바라던 아이의 모습이었습니다.
역사와 사자소학으로 지혜독서 시작
자녀 교육의 원래 목표와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결심을 하고 저는 심선생님의 책을 보며 구체적인 방법을 찾았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찾다보니 그게 역사였고, 그래서 같이 역사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자소학을 조금씩 같이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매주 금요일 저녁이 되면 저희 가족은 식탁에 모여 사자소학을 한 줄 씩 암송하며 그 주에 읽은 역사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읽은 책 중에서 재미있는 내용을 그림으로 때로는 글로 써가며 저와 아빠에게 이야기 해줍니다. 이야기하다 더 궁금한 게 있으면 좀 더 자료를 찾아봅니다. 알아가는 즐거움이 쌓여가니 아이들은 금요일 저녁 시간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이렇게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니 자연스럽게 아이들과의 공통분모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하기 싫은 것을 시키기보다 자신들이 좋아 하는 것을 함께 해 주니 아이들은 엄마, 아빠에게 고맙다는 말을 자주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가 늘어가자, 큰 아이는 역사를 영어로도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몇 몇 유적지에 찾아가 그 곳의 역사적 의미를 저에게 영어로 설명해 주기도 합니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하니 전처럼 공부하라고 닦달하지 않아도 아이들 스스로 공부하게 됩니다.
한번은 큰 아이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 내가 좋아서 이렇게 역사 공부하고 이곳저곳 다니는 건데, 이렇게 지금 당장 중요하지 않은 과목 공부하느라 돈을 많이 쓰는 것 같아서 좀 미안해요.”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엄마는 네가 하고 싶어 하는 거라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응원하고 싶어. 딱히 무엇을 이뤄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공부하면 힘들고 재미가 없잖아. 엄마는 배움은 즐거워야 된다고 생각해, 네가 좋아하고 즐거우면 네가 제대로 배우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답을 해 주면서, 저도 제가 신기하게 여겨졌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걸까?
문제지 푸는 공부보다 인성과 지혜 교육
물론 그 동안의 과정이 모두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어 숙제 할 시간에 역사토론이라... 인성을 위해 수학숙제를 포기하고 온 가족이 이렇게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 나누는 게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심이 들 때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식탁에 모든 가족이 둘러 앉게 되기까지도 참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어색한 아빠는 빨리 하고 자리를 뜨려고 하고, 나이 어린 동생들은 계속 놀아달라고 하고... 그래서 처음 적응 과정에서 도입한 것이 큰 전지를 활용한 놀이 식 토론이었습니다. 막둥이에겐 언니들과 엄마, 아빠가 이야기하는 동안 식탁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게 했습니다. 큰아이와는 달리 역사에 관심 없던 둘째에게는 역사에 나오는 인물을 책에서 찾아서 동생에게 그려주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전등 갓 만들기, 찰흙으로 만들기 등 아이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놀이를 했습니다.
매주 사자소학을 암송하며 일상생활에서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는 그에 맞는 사자소학을 외우는 과제를 주었습니다. 만약, 엄마가 불렀을 때 대답하지 않았다면 부모호아유이추지(父母呼我唯而趨之, 부모님께서 나를 부르시면 '예'하고 대답하고 빨리 달려가야 한다)를 10번 반복하기와 같은 과제였습니다. 요즘은 차에 탈 때마다 사자소학을 한 줄 씩 암송하는 실천을 해 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저희 차에는 사자소학 책이 항상 놓여 있습니다. 이렇게 하니 자연스럽게 어디 갈 때마다 사자소학 구절로 몸과 마음을 무장하고 나서는 느낌이 듭니다.
처음에는 기세 좋게 몇 달을 실천한 후, 한번은 금요일에 제가 너무 피곤해서 한 주를 쉬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약간 흔들릴 때도 있었는데, 한 달에 한번 심 선생님과 함께하는 토요 독서 토론 모임은 흔들리는 나를 잡아주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소신을 갖고 자녀 교육을 하려고 해도, 주위에서 무섭게 질주하는 모습에 흔들릴 때도 많았습니다. ‘과연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이러다 잘 못되면 누가 책임질 수 있나?’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심 선생님의 글과 강연 그리고 같은 길을 가는 많은 가정을 보고 힘을 낼 수 있었고 외로움을 덜 수 있었습니다.
사자소학 공부를 통해서 얻은 것
사자소학으로 지혜독서를 1년 이상 실천해 보고, 우리가족이 얻은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같은 텍스트의 공유, 가족의 소통, 성현을 말씀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기 등 여러 가지 유익함이 있지만 한 단어로 말하라면 ‘마음의 평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현의 말씀에 어떤 에너지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사자소학을 암송하고, 생활 가운데 기억하고 실천하며 아이들의 조급함이 없어지고, 마음이 좀 더 평안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사자소학에 부모의 소중함과 효에 대한 내용이 많아서 그런지, 저나 아빠에 대해 감사해하고 존중하는 아이들의 마음도 좀 더 늘어가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바람
저희 가정은 앞으로 역사와 사자소학 공부를 통해 지혜와 인성을 기르는 가정 중심 교육을 계속 해 보려고 합니다. 역사를 통해 선조들의 삶과 지혜를 배우고, 사자소학을 통해 사람으로 올바로 살아가는 길을 배우고자 합니다. 그리고 올 한해는 나눔의 실천을 몇 가지 더 해 보려고 합니다. 아이들은 해마다 용돈을 저금통에 모아 잠실역사거리 구세군 냄비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오면 저희 가족이 하는 첫 번째 실천이 아이들이 1년 동안 모은 기부금을 구세군 자선냄비에 넣는 것입니다.
가족식탁 대화를 통해 우리 가족이 나눔을 실천할 방법이 또 무엇이 있을까를 의논해 보았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있는 친구들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랐고, 구체적으로 책을 물려 쓰고 아낀 비용으로 성금을 마련 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영어 학원을 같이 다니는 첫째와 둘째는 몇 달 차이로 같은 교재를 쓰고 있습니다. 깨끗하게만 쓰면 언니가 쓴 교재를 지우개로 지우고, 동생이 물려받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런 식으로 해서 아낀 돈을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에 정기 후원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방법을 찾고,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대견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그 동안 인성교육과 지혜교육에 드린 정성과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위로도 됩니다.
아무쪼록 다른 많은 가정도 이런 교육을 실천해서 한 가정이라도 더 행복한 교육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공동체가 만들어 지길 소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