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의 중국어 마스터 비결
중국인과 완벽한 의사소통을 한 우리 조상들
유명한 열하일기에 보면 연암 박지원이 중국 사신으로 가서 북경에서 중국학자와 필담을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에도 통역관이 있었지만, 박지원은 통역관의 도움 없이 중국학자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다. 지금으로 말하면, 영어 한마디도 못하면서 완벽한 영어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비단 이뿐인가? 우리 조상들은 어순도 문법도 완전히 다른 중국어로 수천 년 동안 우리의 역사를 기록하고 중요한 내용은 문서로 남겼다. 다시 오늘날의 버전으로 말하면, 모국어가 아닌 영작으로 우리의 역사와 정부 문서를 남기는 것이다.
한자가 동아시아 공통의 언어이기는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에게 한자로 된 저작물들은 모두 중국어의 어순과 어법을 따르는 외국어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세종대왕께서 우리말의 어순과 어법을 표기할 수 있는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것이 아닌가?
"나랏말싸미 듕귁에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세..."
유명한 논어의 학이편(學而篇)의 내용을 살펴보자 "有朋而自遠方來不亦說乎'', 즉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어찌 기쁘지 아니 한가? 원문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있다 /친구/ 그리고/에서/ 먼곳/ 온다/ 아니가/어찌/ 기쁘다/ 감탄사"
우리말은 주어 + 목적어+ 동사 + 어순인데, 중국어는 기본적으로 주어 +동사 + 목적어와 같은 오히려 영어와 비슷한 언어이다. 즉 우리에게 중국어는 영어와 거의 비슷한 난이도를 가질 수 있는 언어이다. 그런데도 우리 조상들은 완벽하게 중국어를 마스터 했다.
엄밀히 말하면 모든 조상들은 아니다. 한자를 공부하고 과거에 응시 할 자격이 있는 양반과 양인들이 중국어를 완벽하게 마스터 한 것이다. 하여간 학습에 참여한 사람들의 80-90%는 중국어 정복을 해냈다. 현재의 후손들이 영어 학습에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매달리는데 10-20%도 안 되는 정복률을 보이는 것에 비해 탁월한 투입 대비 산출 결과이다.
비록 전체 인구에 비하면 소수의 엘리트들이 한 일이기는 하나, 바로 여기서 한국 사람들이 수십 년간 고민해온 영어 정복이라는 문제의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조상들이 외국어나 다름없는 한자를 학습한 방법은 수많은 다른 고전 문명에서 사용한 학습법과 동일하다. 바로 암송이다. 읽고 암송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읽고(낭송), 암송하고, 생각하고 토론하는 방법이었다. 암송을 할 때는 다른 문명권과 마찬가지로 리듬과 음감을 넣어서 암송하는 것이다. "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르황"의 천자문에서 시작하여, 자왈 "유붕이 자원방래[하니] 불역열호[아](有朋而自遠方來不亦說乎)'', 즉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어찌 기쁘지 아니 한가(공자의 <논어> 학이편(學而篇))하며 리듬을 넣고, 몸을 흔들면서 본문을 수십 번 읽으며 암송하고 뜻을 음미했다.
지금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것처럼, 당시에는 카세트테이프도 MP3도, 비디오 자료도 없었다. 오직, 문자와 뜻만을 가지고 공부해야 했다. 그래도 지금 우리의 영어 실력과 비교해 보면, 우리 조상들의 한문(중국어) 실력은 거의 원어민 수준에 가까웠다. 바로 선택과 집중 때문이 아닐까? 듣기, 말하기는 포기하고 읽기, 쓰기에 집중했고, 암송이라는 탁월한 학습 방법으로 소기의 교육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읽고, 외우고, 생각하고, 토론한다.
위에서 말한 연암 박지원이나 당시 북경을 방문한 조선의 실학자들이 중국의 학자들과 자연스럽게 필답을 나누고, 의사소통 할 수 있었던 것은 낭독과 암송, 그리고 암송한 내용을 다시 곱씹고 반추하며 사유하는 우리 조상들의 확실한 학습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암 박지원과 함께 비슷한 시기를 산 홍대용이 중국의 매헌(梅軒) 조욱종 이라는 청년에게 보낸 독서법과 암송 방법에 대해 쓴 편지에는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완벽한 한자(중국어) 학습을 했는지에 대한 상세한 방법이 나와 있다. (안대회, 2007)
" 본래 기억하고 암송하는 기송(記誦)을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지만, 초학자로서는 기송을 버리면 더욱이 기댈 데가 없다. 그러므로 매일 배운 것을 먼저 정확하게 암송하되 음독에 착오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뒤에 비로소 서산(書算)을 세우고, 한 번 읽고 나서는 한 번 암송한다. 그 다음에 한 번 보고, 보고 난 다음에는 다시 읽어 모두 3,40번 되풀이하고 나서 그만둔다. 한 권이나 반 권을 다 배웠을 때에는 전에 배운 것까지 포함해 먼저 읽고, 그 다음에는 암송하고 보되, 각각 서너 너덧 번 되풀이하고 그친다. 글을 읽을 때에는 소리 높여 읽어서는 안 된다. 소리가 높으면 기운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눈을 건성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눈을 돌리면 마음이 달아나기 때문이다. 몸을 흔들어서도 안 된다. 정신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글을 암송할 때 틀려서는 안 되고, 중복해서도 안 된다. 너무 빨라서도 안 되는데 너무 빠르면 조급하고 사나워서 맛이 짧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느려도 안 되는데 너무 느리면 늘어지고 방탕해져서 생각이 들뜨기 때문이다. 책을 볼 때에는 문장을 마음속으로 암송하면서 뜻을 곰곰히 생각하여 찾되, 주석을 참조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궁구한다. 한갓 책에 눈을 붙이기만 하고 마음을 두지 않으면 아무 이득이 없다. 위에 말한 세 조목은 나누어 말하면 다르게 보이나,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체득하기를 요구한 점에서는 같다. 모름지기 몸을 거두어 단정히 앉고, 눈은 책을 똑바로 보며, 귀는 거두어들이고, 수족은 함부로 늘리지 말며, 정신을 모아 책에 집중해야 한다. 이러한 방법을 따라 쉼 없이 해나가면 뜻과 맛이 날로 새로워져 저절로 무궁한 묘미가 생기게 된다. (홍대용, <매헌에게 주는 편지>)
사실 홍대용은 무조건 읽고, 암송하는 회수만 강조하는 서산(書算- 읽은 회수를 세어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는지 기록하는 방법)에서 벗어나 암송 후의 사색을 강조한다. 읽고 암송하면 어휘와 표현은 익힐 수 있지만, 사색이 빠지면 자기 것이 되지 못함을 지적한 것이다. 순조 시대의 문인 홍길주는 이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올바른 책 읽기를 하려면 송유(誦惟)를 해야 한다."
즉 빼어난 글을 우선 암송하고 그 다음에 암송한 내용을 사유하라는 것이다.
조상들의 탁월한 외국어 학습법: 선택과 집중
근대 시대 이후 우리는 근대화에 실패한 책임을 물어 우리 조상들이 물려 준 많은 좋은 전통을 무시해 왔다. 무조건 서양 것만을 쫓았다. 하지만 조선 시대의 교육은 한 왕조를 500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지탱해 주고, 문화적인 일관성을 갖게 해 주었다. 20세기 한민족은 영어 공부에 수많은 시간과 돈을 쏟아 붇고도, 여전히 영어에 기죽어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훨씬 적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고도, 한자(중국어)를 마스터 했으며, 행정, 외교 모든 사항을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도 어려움이 없이 처리했다.
내가 보는 우리 조상들의 성공 요인은 바로 선택과 집중이다.
첫째, 배울 사람을 선택했다. 신분제라는 특수한 상황이었지만, 학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양반을 포함한 양인이었다. 즉 선비와 농부였다. 소수의 인원이 선발되어 집중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부모가 배움이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유전적으로도 학습 능력이 있고, 집에서도 학습 분위기가 잘 형성되었다. 우리가 영어 학습에 실패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해야 한다"는 비 생산적인 평등주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정말 전 국민이 영어를 다 잘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글로벌 코리아를 만들기 위해 전국민이 모두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는 영어 수준은 도대체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 하는가? 중고등 6년 대학 4년을 배워도 영어 한마디 못한다는 불평이 한 30-40년 계속 되면, 이제 진지하게 '누가', '어느 정도까지'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국민적인 합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둘째 커리큘럼은 단순했고, 일정 수준에 오르기 전에 우선 기본 표현이나 문장을 완벽하게 마스터 하게 했다. 가장 잘 알려진 커리큘럼은 천자문-동몽선습/명심 보감/소학- 사서삼경 (四書五經- 논어 (論語), 맹자 (孟子), 대학 (大學), 중용 (中庸), 시경 (詩經), 서경 (書經) 역경 (易經), 여기에 춘추 (春秋)와 예기 (禮記)를 더해 사서오경이라고도 한다)이다. 지금 서점에 영어나 영어 학습에 관련된 책을 보면 머리가 어리지울 지경이다.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홍수 때 먹을 물 없다고, 과연 이렇게 많은 비용을 들여 이런 수십 종의 책을 찍어내서, 한국인의 영어 실력은 얼마가 향상되었는가?
우리 조상들의 한자(중국어) 학습 방법을 오늘 날, 영어 교육에 접목 시켜보면 어떨까? 우선 기본적으로 천자문 수준의 중학교 영단어와 기본 표현과 문법을 공통으로 가르친다. 그 다음에는 "필요한 사람에게만" 고전적인 커리큘럼으로 집중적인 영어 학습을 시킨다. 고전적인 커리큘럼이라 함은 영어 성경이나 표현이나 내용이 좋은 몇 몇 고전이나 외울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선정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학습 방법은 읽고, 외우고, 사유하게 하는 것이다. 조상들과 달리 20세기에 사는 우리는 좋은 음성 및 영상 자료도 많이 가지고 있다. 조상들이 한 것처럼 읽고, 외우고, 사유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반복하면 웬만한 학습자들은 고등학교나 대학교만 나와도 미국에서 공부하거나 일하는데 지장이 없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실천한다. 백금산의 <<책 읽는 방법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는 우리 조상들과 서양의 영적인 거인들의 독서법을 소개한다. 핵심은 한권의 책을 백 권 읽는 것이 100권을 책을 한권 읽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한두 가지에 집중해야,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 지금 같은 정보화 시대에 한 책만 백번 읽으라는 것은 너무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 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절충안을 생각해 본다. 정말 중요한 한 책을 백번 읽고, 암송하며 나머지는 자신의 필요에 맞는 다양한 책을 읽는 것이다. 집중 독서와 다독을 병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집중 독서의 대상은 반드시 암송이 병행 되어야 한다.
영어 학습에서도 조상들의 선택과 집중의 원리로 성공한 많은 사례가 있다. 수 많은 영어 교육이론을 무색하게 한 정찬용의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좋은 테이프하나 사서 늘어지게 듣고, 받아쓰기(dictation)을 하라는 것 아닌가? 김다윗 선교사와 그의 자녀들은 신약과 구약의 주요 내용을 통째로 암송해서, 영어를 마스터하고, 싱가폴 대학에 어려움 없이 수학을 한다고 하지 않는가?
많은 교재가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정말 자기에게 맞는 하나 둘을 선택하여 그것에 끈기 있게 집중을 하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오늘도 서점에서 이 책 저책을 찾아 헤매고 있는가? 자신의 인생을 변화 시키고, 심금을 울릴 만한 한권의 책을 정하라. 그리고 읽고, 또 읽고, 내용을 암송하라, 그 뜻을 되 새김길하고, 배운 내용을 다른 사람들과 나눠라. 우리 조상이 가르쳐준 가장 확실한 외국어 학습법이 바로 이것이다.
<참고문헌> 안대회, 선비답게 산다는 것, 푸른역사, 2007 백금산, 책 읽는 방법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부흥과개혁사, 2002 정찬용,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 사회평론 김다윗, 마가복음 통째로 외우기/ 로마서 통째로 외우기/ 모세오경 통째로 외우기, 살림
★Columnist 소개 ★
심정섭은 서울대 인문대를 졸업하고 고려대 영어교육학과 학사 편입 한 후, 한양대학교에서 영어 교육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IMF 1세대로 중소 무역회사, 컨설팅 회사, 현대 자동차 해외 영업 본부를 거치며, 바닥부터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이시기에 잠깐 했던 영어강사 생활을 통해 본인이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고려대 학사 편입 한 후 대치동과 강남에서 대학생과 고등학생에게 10년 동안 수천 명의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이제는 영어라는 물고기 보다, 인생 경영이라는 물고기 잡는 법을 전하는 것에 인생의 비전을 두고 있다. 사교육을 통해 경제적 안정을 거두었지만, 지금의 사교육과 가정의 해체로는 나라의 비전이 없다고 보고, 사교육비 경감과 가정의 회복, 유태인식 독서, 토론 교육의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심정섭의 자연학습법 cafe.daum.net/nature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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